폴란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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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 문학은 10세기 말 기독교 수용 이후 라틴어 문학으로 시작되어 폴란드어 문학으로 발전했다. 중세 시대에는 종교적 색채가 강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 폴란드어 문학이 발전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귀족 중심의 문학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사회 개혁을 주제로 한 문학이 등장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작품들이, 실증주의 시대에는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나타났다. 20세기 초 젊은 폴란드 시대를 거쳐 양 대전 시기에는 다양한 문학적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전쟁의 상처를 다루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폴란드 문학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우와디스와프 레이몬트, 체스와프 미워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올가 토카르추크 등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하며 세계 문학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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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언어 | 폴란드어 이디시어 독일어 리투아니아어 루테니아어 로마어 (발트 로마어 북중앙 로마어 신테 로마어 블락스 로마어) 실레지아어 카슈브어 빌라모비아어 |
관련 주제 | 폴란드 문화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계몽주의 낭만주의 실증주의 젊은 폴란드 제2공화국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인민 공화국 현대 |
요리 | 폴란드 요리 |
전통 | 폴란드의 문화사 |
축제 | 폴란드의 음악 |
미술 | 예술가 화가 건축 |
만화 | 폴란드 만화 |
작가 | 폴란드어 작가 목록 |
시인 | 폴란드어 시인 목록 |
연극 | 폴란드의 연극 |
음악가 | 작곡가 음악가 |
기념물 | 성 |
세계 유산 | 폴란드의 세계유산 목록 |
스포츠 | 축구 핸드볼 경마 모터스포츠 배구 겨울 스포츠 |
2. 중세 문학 (10세기 말 ~ 15세기)
966년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 수 세기 동안 로마 가톨릭교회 문화의 영향으로 라틴어 문학이 발달하였다. 초기 폴란드 문학은 대부분 라틴어로 쓰였으며, 12~13세기의 연대기와 성인전이 대표적이다. 폴란드어 문헌은 13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가장 오래된 폴란드어 텍스트는 성모 마리아 찬가인 <보구로지차>이다.[1]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였던 16세기 후반은 폴란드 문화의 황금 시대라고 불린다. 이 시대에는 슐라흐타(기사 계급에 기원을 둔 중·소 귀족 계급)가 성장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 특권을 획득하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종교개혁 운동은 폴란드어를 민족의 문장 언어로 발전시키는 운동과 연결되어, 1551년에는 신교도에 의해 최초로 성서의 폴란드어 번역이 이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폴란드어는 라틴어를 대체하게 되었다.[1]
17세기는 30년 전쟁(1618-48)의 영향으로 체코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이 쇠퇴하고 가톨릭주의가 다시 힘을 얻은 시기였다.[5] 폴란드 왕국은 중앙 집권이 약화되고 귀족 중심의 지방 분권 경향이 나타나면서 국력이 약해졌다. 17세기 초 융성했던 시민 계급도 쇠퇴하여 문화의 중심은 대귀족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폴란드 문학은 바로크 시대를 맞이하여 지방색이 강해지고 장르가 다양해졌으며, 역사적 서사시가 새롭게 인기를 얻었다.[5]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내정 간섭과 폴란드 분할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폴란드에는 계몽주의 사상이 확산되었다.[7] 합리주의, 애국주의, 사회 개혁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이 다수 등장하였으며, 소설, 희극, 풍자시 등 다양한 장르가 발전하였다.
폴란드는 1795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3개국에 의해 분할 통치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폴란드 문학의 성숙기였으며, 문학은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 낭만주의는 국민적 염원을 발산하는 수단으로 등장했으며, 1830-1831년 혁명이 진압된 후 많은 우국지사들이 서방으로 망명하여 아담 미츠키에비치,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등 대 시인들을 중심으로 낭만주의 문학이 발전했다.[8]
15세기는 폴란드 문화의 첫 개화기로, 야기에우워 왕조의 강력한 중앙 집권 하에 폴란드는 유럽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1364년 설립된 크라쿠프 대학은 1400년에 종합 대학으로 확대되어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그제고시, 필립 부오나코르시 등의 학자들을 통해 인문주의가 폴란드에 빠르게 전파되었다.[1]
얀 두우고시의 12권으로 된 <폴란드 사>는 이 시기 민족 의식의 성장을 보여준다. 얀 오스트로루그는 <국가 건설에 관한 각서>(1475)에서 교회와 귀족 사회를 비판한 최초의 걸출한 인문주의자였다. 1473년 브로츠와프에서 활판 인쇄가 시작되었고, 1475년에는 최초의 폴란드어 간행물이 인쇄되었다.[1]
초기 폴란드 문화를 반영하는 문장으로는 "''Day ut ia pobrusa, a ti poziwai''" ("내가 갈고 너는 쉬어라")가 있으며, 이는 Liber fundationis에 기록되어 있다.[3] 중세 폴란드 작품으로는 라틴어와 고폴란드어로 된 ''성십자가 설교문'', ''소피아 왕비 성경'' 등이 있다.[1]
''보구로지차''는 15세기에 기록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유행했던 성모 마리아 찬가로 국가가요 역할을 했다. 폴리카르프 선생과 죽음의 대화와 함께 인쇄기로 재현된 최초의 폴란드어 텍스트 중 하나였다.[1]
1470년대 초 카스퍼 스트라우베가 크라쿠프에 폴란드 최초의 인쇄소 중 하나를 설립했다.[1] 1475년 카스퍼 엘리안은 브로츠와프에 인쇄소를 설립했고, 20년 후 슈바이폴트 피올은 크라쿠프에 최초의 키릴 문자 인쇄소를 설립했다. 이 시기 주목할 만한 텍스트로는 ''성 플로리아누스의 예규서'', ''Statua synodalia Wratislaviensia''(1475), 얀 두우고시의 ''연대기''와 ''Catalogus archiepiscoporum Gnesnensium'' 등이 있다.[1]
3. 르네상스 문학 (16세기)
폴란드어 문학의 첫 거장은 미코와이 레이(1505-1569)이다. 미코와이 레이는 풍자시 <귀족·대관(代官)·사제 3자의 짤막한 토론>(1543)을 통해 폴란드 문학의 시작을 알렸다. 그의 대표작은 산문으로 쓴 종교적·철학적 사색을 담은 작품집 <거울>(1567)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산문 <성실한 인간의 일생>은 한 슐라흐타(소 귀족)의 진지한 윤리 탐구 과정을 간결하고 명쾌한 구어체로 쓴 것으로, 문학 언어로서의 폴란드어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폴란드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물은 위대한 시인 얀 코하노프스키(1530-1584)이다. 서양 고전 시 정신과 폴란드 민족 전래의 모티프를 융합하여 국민 시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폴란드 최초의 비극 <그리스 사절(使節)의 사퇴>(1578)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딸 우르술라를 애도한 <만가>(1580) 등을 남겼다.[4]
예수회 신부 피오트르 스카르가(1536-1612)는 종교개혁에 반대하며 수많은 종교 저작을 남겼다. <성자열전(聖者列傳)>(1579)은 문학적 가치가 높으며, <의회 앞에서의 설교>(1597)는 '설교' 형식을 빌려 왕권 강화, 농민 권리 보호 등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논한 수준 높은 산문이다.
야기에우워 왕조(Jagiellonian dynasty) 통치 아래 폴란드 문화와 예술은 번성했으며, 많은 외국 시인과 작가들이 폴란드에 정착하여 새로운 문학적 경향을 가져왔다. 필리포 보나코르시(Filippo Buonaccorsi)인 칼리마쿠스(Kallimach)와 콘라드 켈티스(Conrad Celtis)가 대표적이다. 1488년에는 세계 최초의 문학 단체인 비스툴라 문학 협회(Sodalitas Litterarum Vistulana)가 크라쿠프에서 설립되었으며, 콘라드 켈테스(Conrad Celtes), 알베르트 브루제프스키(Albert Brudzewski), 필립 칼리마쿠스(Filip Callimachus), 로렌티우스 코르비누스(Laurentius Corvinus) 등이 주요 회원이었다.
16세기에 활동한 주요 작가와 시인은 다음과 같다.작가 주요 작품 및 활동 미콜라 우소프스키 (Hussowczyk, 1480?–1533?) 안제이 크시츠키 (1482–1537) 요하네스 단티스쿠스 (1485–1548) 얀 우라스키 (1499–1560) Communae Poloniae Regni privilegium 안제이 프리치 모드제프스키 (1503–1572) De Republica emendanda 미코와이 레이 (1505–1569) Krótka rozprawa... 클레멘스 야니츠키 (Ianicius, 1516–1542) 우카슈 구르니츠키 (1524–1603) 얀 코하노프스키 (1530–1584) 슬픔(Laments) 피오트르 스카르가 (1536–1612) 바르토시 파프로츠키 (1543?–1614) 역사가, 족보학자 시몬 시모노비치 (1558–1629) 다니엘 나보로프스키 (1573–1640) 마체이 카지미에시 사르비에프스키 (1595–1640)
4. 바로크 문학 (17세기)
바츠워프 포토츠키(1625-96)의 <호침의 싸움>(1670)은 애국적이고 서사적인 작품으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 서사시이다. 안제이 모르슈틴(1613-1693)은 이탈리아 바로크 시인 잠바티스타 마리노의 영향을 받아 연애시를 썼으며, 코르네유의 <르 시드>를 훌륭하게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귀족 출신 얀 흐리조스톰 파세크(1636-1701)의 <회상록>은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5]
예수회는 1620년부터 1764년까지 폴란드 바로크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수회 고등학교는 라틴어 고전을 바탕으로 교육을 제공하여 정치 경력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시 연구는 라틴어와 폴란드어 시를 모두 쓰는 실용적인 지식을 필요로 했고, 이는 전국적으로 시인과 운문 작가의 수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인문주의적 교육을 바탕으로 뛰어난 작가들이 등장했다.[5] 피오트르 코하노프스키(1566~1620)는 토르콰토 타소의 『예루살렘 해방』을 번역했고, 시인 수석이었던 마체이 카지미에시 사르비예프스키(1595~1640)는 라틴어 작품으로 "크리스티아누스 호라티우스"(그리스도교 호라티우스)라고 불리며 유럽에서 명성을 얻었다. 쾌락주의적인 신하이자 외교관이었던 얀 안드제이 모르슈틴(1621~1693)은 세련된 시를 통해 지상의 즐거움을 찬양했고, 바츠와프 포토츠키(1621~1696)는 전형적인 폴란드 슈략타의 의견에 깊은 성찰과 실존적 경험을 결합한 작품을 썼다.[5]
이 시기에 활동한 주요 작가와 시인은 다음과 같다.작가 주요 작품 및 활동 세바스티안 그라보비에츠키(1543~1607) 미콜라예 셉 사르진스키(1550~1581) 『리미』(Rymy) 카스페르 미아스코프스키(1550?~1622) 피오트르 코하노프스키(1566~1620) 토르콰토 타소의 『예루살렘 해방』 번역 다니엘 나보로프스키(1573~1640) 히에로님 모르슈틴(1581~1623) 시몬 스타로볼스키(1588~1656) 카스페르 트바르도프스키(1592경~1641경) 『쿠피드의 교훈』(Lekcyje Kupidynowe) 마체이 카지미에시 사르비예프스키(1595~1640) "크리스티아누스 호라티우스" 요제프 바르트워미에이 짐로로비치(1597~1677) 사무엘 트바르도프스키(1600?~1661) 시몬 짐로로비치(1608?~1629) 『록소랑키』(Roksolanki) 크시슈토프 오팔린스키(1611~1655) 우카슈 오팔린스키(1612~1666) 얀 안드제이 모르슈틴(1621~1693) 주요 바로크 시인 바츠와프 포토츠키(1621~1696) 『호치미스크 전쟁』(Wojna Chocimska) 지그비그네프 모르슈틴(1628?~1689) 스타니스와프 그로호프스키(1633~1645) 얀 크리조스톰 파섹(1636~1701) 『회고록』(Pamietniki)[6] 얀 즈 키얀(17세기 초)
5. 계몽주의 문학 (18세기)
이 시기를 대표하는 문학자로는 '폴란드 근대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그나치 크라시츠키(1735-1801)와 시인 스타니스와프 트렘베츠키(1739-1812)가 있다. 이그나치 크라시츠키는 <우화와 비유담>(1778), <풍자시>(1779) 등의 걸작 외에도 폴란드 소설의 선구로 평가받는 <미코와이 도스비아트진스키의 모험>(1776)을 저술했다. 스타니스와프 트렘베츠키는 라 퐁텐 풍의 우화시를 썼다. 이들 외에도 폴란드 최초의 희극 <의원의 귀환>(1790)을 쓴 율리안 우르신 니엠체비치(1757-1841)가 있다. 이그나치 크라시츠키는 "시의 왕자"이자 폴란드의 라 퐁텐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의 폴란드 소설인 『니콜라스 위즈덤 씨의 모험』의 저자이자, 극작가, 언론인, 백과사전 편찬자, 프랑스어와 그리스어 번역가이기도 했다.
계몽주의 시대의 주목할 만한 폴란드 작가 및 시인들은 다음과 같다.작가 주요 작품 및 활동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 (1677–1766) "Głos wolny..." 엘즈비에타 드루즈바츠카 (1695?–1765) 스타니스와프 코나르스키 (1700–1773) "O skutecznym rad sposobie" 바르바라 상구슈카 (1718–1791) 프란치셰크 보호몰레츠 (1720–1784) 잡지 Monitor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냐토프스키 (1732–1798) 아담 나루셰비치 (1733–1796) 이그나치 크라시츠키 (1735–1801) 우화와 비유 오누프리 코프친스키 (1736–1817) 스타니스와프 트렘베츠키 (1739–1812) 프란치셰크 살레지 예지에르스키 (1740–1791) 프란치셰크 카르핀스키 (1741–1825) 얀 피오트르 노르블린 (1745–1830) 이자벨라 차르토리스카 (1746–1835)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프란치셰크 크냐즈닌 (1750–1807) 후고 코우와타이 (1750–1812) 쿠즈니차 코우와타요프스카 프란치셰크 자브워츠키 (1754–1821) 토바르지스토보 도 크시옹 엘레멘타르니흐 스타니스와프 스타시츠 (1755–1826) 1791년 헌법 얀 시냐데츠키 (1756–1830) 율리안 우르신 니엠체비치 (1758–1841) 1791년 헌법 야쿠브 야신스키 (1759–1794) 타데우시 차츠키 (1765–1813) 토바르지스토보 프시야추프 나욱 예드제이 시냐데츠키 (1768–1838) 최초의 폴란드 화학교과서 사무엘 린데 (1771–1847) 토바르지스토보 도 크시옹 엘레멘타르니흐 요제프 막시밀리안 오소린스키 자크와드 나로드비 임. 오소린스키흐 안제이 스타니스와프 자우우스키와 요제프 자우우스키 비블리오테카 자우우스키흐
6. 낭만주의 문학 (19세기)
폴란드 낭만주의는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외세 점령에 대한 독립 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으며, 폴란드 국민의 이상과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표현했다. 1863년 러시아의 1월 봉기 진압과 시베리아 강제 추방으로 폴란드 낭만주의는 막을 내렸다.[8]
폴란드 낭만주의 문학은 두 시기로 나뉜다.
낭만주의 시대의 주요 작가와 시인은 다음과 같다.
작가 및 시인 | 주요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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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비르템베르스카 (1768–1854) | |
아담 예지 차르토리스키 (1770–1861) | |
안토니 고레츠키 (1787–1861) | |
알렉산데르 프레드로 (1791–1876) | 젬스타 |
카지미에시 브로지친스키 (1791–1835) | |
헨리크 제부스키 (1791–1866) | |
안토니 말체프스키 (1793–1826) | |
얀 체초트 (1796–1846) | |
토마슈 잔 (1796–1855) | |
클레멘티나 호프마노바 (1798–1845) | |
아담 미츠키에비치 (1798–1855) | 디아디, 판 타데우시 |
프란치셰크 살레지 드모호프스키 (1801–1871) | |
세베린 고시친스키 (1801–1876) | |
요제프 보단 자레프스키 (1802–1886) | |
마우리치 모흐나츠키 (1803–1834) | |
미하우 차이코프스키 (1804–1886) | |
루찬 시에미엔스키 (1807–1877) | |
빈첸티 폴 (1807–1882) | |
율리우시 스워와츠키 (1809–1849) | 발라디나, 코르디안 |
지그문트 크라신스키 (1812–1859) | 비신곡 |
요제프 이그나치 크라셰프스키 (1812–1887) | 스타라 바시 |
구스타프 에렌베르크 (1818–1895) | |
나르치자 즈미호프스카 (1819–1876) | |
키프리안 카밀 노르비트 (1821–1883) | 바데메쿰 |
테오필 레나르토비치 (1822–1893) | |
블라디스와프 시로콤라 (1823–1862) | |
코르넬 우예이스키 (1823–1897) | |
테오도르 토마슈 예시 (1824–1915) | |
미에치스와프 로마노프스키 (1834–1863) | |
야드비가 우슈체프스카 (1834–1908) |
6. 1. 미츠키에비치와 그의 작품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 1798-1855)는 폴란드의 낭만주의 시인이다. 리투아니아 소 귀족 가문 출신으로, 1819년 빌노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작(詩作)에 정진했다. 1822년 철학 학사 학위를 받고 처녀 시집을 출판하며 낭만주의 시인으로 데뷔했다. 1823년 극시 <선조의 전야제>(제2부, 제4부)를 수록한 제2 시집을 출간했으나, 대학 시절 학생 운동 혐의로 러시아 관헌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러시아로 압송되었다. 러시아 체재 중 푸시킨 등 러시아 문학가들과 교류하고, <크림의 소네트>(1826), 서사시 <콘라트 발렌로트>(1828)를 출판했다. 1829년 러시아를 탈출, 유럽을 방랑하며 독일에서 헤겔의 강의를 듣고 괴테를 방문하기도 했다. 1830년 말 바르샤바 봉기 소식을 로마에서 접하고 봉기에 가담하고자 귀국을 서둘렀으나, 자금 조달 등으로 포즈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봉기가 실패한 뒤였다. 이후 드레스덴에서 <선조의 전야제> 제3부(1832)를 썼고, 망명지 파리에서 <판 타데우시>를 완성했다. 1839-1840년 로잔 대학의 라틴 문학 교수, 1840-1844년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의 슬라브 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1855년 크림 전쟁 발발 후 콘스탄티노플로 건너가 터키 군에 참전할 폴란드 의용군을 조직하려 했으나,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 '''Pan Tadeusz'''(1834)는 미츠키에비치의 장편 서사시이다. 고향 리투아니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속을 배경으로 1811-1812년 폴란드 사회사를 묘사한 약 1만 행, 12편의 대서사시로, 소설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대귀족 호레슈코 가(家)와 소귀족 소프리츠아 가(家) 간의 오랜 불화가 중심 내용이며, 타데우시의 부친 야체크 소프리츠아가 젊은 날의 과오를 속죄하고자 신부(神父)가 되어 조국 재건 운동에 투신, 양가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묘사한다.
6. 2. 스워바츠키와 그의 작품
'''율리우시 스워바츠키'''(Juliusz Słowacki|율리우시 스워바츠키pl, 1809년-1849년)는 폴란드의 시인이다. 미츠키에비치와 함께 폴란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망명지 파리에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짧은 일생을 살았지만,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생전에는 미츠키에비치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기 말 '젊은 폴란드'의 시인들에 의해 정당하게 평가되어 그들의 시혼(詩魂)을 배양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연애시 〈스위스에서〉(1839년)가 그의 수많은 서정시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히며, 근대 희곡의 창시자로서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아 폴란드의 역사 전설에서 취재한 사극 《코르디안》(Kordian, 1833년), 《릴라 베네다》(1840년) 등이 있다. 바이런의 《돈 주앙》 풍의 장편 담시(譚詩) 《베니오프스키》(Beniowski, 1841년)는 원숙한 작품이며, 최후의 작품인 미완성의 환상적 서사시 《정령왕(精靈王)》에서 달성한 그의 시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6. 3. 기타 낭만주의 작가들
지그문트 크라신스키(1812-1859)는 명문 귀족 집안 출신으로, 대표작인 희곡 《비신곡(1833)》에서 귀족 계급과 민중 간의 투쟁을 묘사하였다. 이 작품은 민중의 승리로 끝나는 과정을 그리며, 에필로그에서는 민중 지도자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환영을 보고 죽는 묵시를 삽입했다.[1]치프리안 노르비트(1821-1883)는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20세기 초에 지적인 시인으로 재발견되었다. 크라셰프스키(1812-1887)는 방대한 양의 역사 소설과 대중 소설을 집필하여 소설 발달에 기여했다.[1]
7. 실증주의 문학 (19세기 후반)
1월 봉기 실패 후, 폴란드 문학은 낭만주의적 민족 독립의 꿈을 버리고 실증주의 사상으로 전환하였다. 실증주의는 국내 경제, 기술, 문화, 교육을 개선하고, 경제 발전과 교육 보급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실천적 운동으로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실증주의 문학 시대는 1864년부터 1890년까지로, 프루스, 오제슈코바, 시엔키에비치 등의 리얼리즘 문학이 대표적이며, 소설 장르가 융성했다.
프루스(1847-1912)는 <파라오와 기도승>(1897)과 장편 소설 <인형>(1887-1889)으로 대표되며, <인형>은 대도시 바르샤바의 다양한 군중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오제슈코바(1841-1910)는 여성 해방 문제와 유대인 문제 등 사회 윤리에 관심을 가졌으며, 고향 리투아니아의 자연과 사회상을 묘사한 <니에멘 하반(河畔)에서>(1887)가 대표작이다. 시엔키에비치는 <쿠오 바디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폴란드 실증주의는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회의주의와 이성을 중시했다. 이 시기 작가들은 "유기적 작업"을 통해 여성과 폴란드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권 확립, 폴란드 유대인의 문화적 동화, 독일 문화투쟁에 따른 독일화와 폴란드인 강제 이주로부터 폴란드 인구를 방어하는 것을 주제로 다루었다.[9] 작가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사회가 통합된 "사회 유기체"로 기능할 수 있도록 건설적인 애국심을 교육하는 데 힘썼다.[9]
폴란드 실증주의 시대의 주요 작가와 시인은 다음과 같다.
작가/시인 | 주요 작품 |
---|---|
나르치자 즈미호프스카(Narcyza Żmichowska) (1819–76) | 폴란드 여성주의의 선구자 |
에드문트 호예츠키(Edmund Chojecki) (1822–99) | |
마리아 일니츠카(Maria Ilnicka) (1825 또는 1827–97) | |
요제프 수이스키(Józef Szujski) (1835–83) | |
미하우 바우츠키(Michał Bałucki) (1837–1901) | |
아담 아스닉(Adam Asnyk) (1838–97) | |
아돌프 디가신스키(Adolf Dygasiński) (1839–1902) | |
엘리자 오르제슈코바(Eliza Orzeszkowa) (1841–1910) | 니엠넘 위에(Nad Niemnem) |
마리아 코노프니츠카(Maria Konopnicka) (1842–1910) | 로타 |
볼레스와프 프루스(Bolesław Prus) (1847–1912) | 인형, 파라오 |
카지미에시 잘레프스키(Kazimierz Zalewski) (1849–1919) | |
알렉산데르 스뇬토호프스키(Aleksander Świętochowski) (1849–1938) | |
가브리엘라 자폴스카(Gabriela Zapolska) (1857–1921) | |
마리아 로드지에비초브나(Maria Rodziewiczówna) (1863–1944) |
7. 1. 시엔키에비치와 그의 작품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 폴란드의 소설가이다. 러시아 령에 속한 볼라오크제이스카의 소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였다. 학생 시절부터 창작에 뜻을 두어 몇 개의 습작을 발표했다. 1876년부터 3년간 미국에 유학하여 창작의 시야를 넓힌 후 <등대지기>(1882), <용사 바르테크>(1882) 등의 단편을 썼다. 1880년경부터 역사 소설 분야를 개척하여 17세기 폴란드의 이국민(異國民)과의 영웅적인 격전에서 취재한 역사 3부작 <불과 검(劍)>(1884), <대홍수>(1886), <판 보워디요프스키>(1888)로 국민적 인기를 얻었고, 이어서 <쿠오 바디스>로 그 명성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190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중 국제적십자사의 구호 활동에 종사하는 동안 스위스에서 사망했다.[1]
:'''Quo Vadis''' (1895) 시엔키에비치의 역사 소설. 로마의 청년 귀족 비니키우스가 폭군 네로의 인질인 리기아에게 연애를 하다가 리기아의 신앙심에 감화되어 개심하여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루기까지의 경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주제는 기원 전 1세기의 로마에서 가혹한 박해를 이겨낸 기독교의 승리에 있는데, 여주인공 리기아를 슬라브 족의 왕녀로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망국의 비운에 젖은 조국 폴란드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작가는 정확한 자료와 풍부한 상상력을 사용하여 네로 시대 로마의 파노라마를 곳곳에 펼쳐 보이고 있다. 노벨상 수상 작품.[1]
8. 젊은 폴란드 문학 (19세기 말 ~ 20세기 초)
19세기 말, 자본주의 발달로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러시아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실증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적 경향과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젊은 폴란드' 문학이 등장했다. 이들은 사회적, 도덕적 속박을 거부하고 개성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 지상주의를 표방했다.[10]
이론적 지도자는 시인이자 극작가인 스타니스와프 프지비셰프스키였다. 카지미에시 프제르바-테트마예르, 얀 카스프로비치, 레오폴트 스타프 등 뛰어난 시인들이 이 그룹에 속했다. 특히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안스키는 풍자극 <혼례>(1901)와 심오한 상징적 극시를 발표하며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한 극작가로 주목받았다. 소설 분야에서는 슈테판 제롬스키가 역사 소설 <재>(1904)를 발표했고,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는 대작 <농민>(1904-1909)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10]
근대주의 시대의 일부인 젊은 폴란드 운동은 1890년경에 시작되어 폴란드의 독립 회복(1918년)과 함께 끝났다. 초기에는 퇴폐주의, 상징주의 등 미학적 반대를 특징으로 했다. 이후 1905년 혁명 등 유럽의 사회 정치적 격변과 함께 등장한 후기 이념은 신낭만주의라고도 불리며, 사회 불평등 비판, 폴란드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1905년 헨리크 시엔키에비치가 애국적인 삼부작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10]
젊은 폴란드 시기의 주요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10]
작가 | 출생-사망 | 주요 작품 및 활동 |
---|---|---|
바츠와프 시에로셰프스키 | 1858년 ~ 1945년 | |
얀 카스프로비치 | 1860년 ~ 1926년 | |
안토니 랑게 | 1863년 ~ 1929년 | |
슈테판 제롬스키 | 1864년 ~ 1925년 | 프셰드비오슈네 (삼부작) |
프란치셰크 노비츠키 | 1864년 ~ 1935년 | |
카지미에시 프제르바-테트마예르 | 1865년 ~ 1940년 | |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 | 1867년 ~ 1925년 | 농부, 노벨 문학상, 1924 |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안스키 | 1869년 ~ 1907년 | |
타데우시 미친스키 | 1873년 ~ 1918년 | |
타데우시 릿트너 | 1873년 ~ 1921년 | |
타데우시 보이-젤렌스키 | 1874년 ~ 1941년 | 지엘로니 발로닉 |
브와디스와프 오르칸 | 1875년 ~ 1930년 | |
바츠와프 베렌트 | 1878년 ~ 1940년 | |
레오폴트 스타프 | 1878년 ~ 1957년 |
9. 양 대전 간의 문학 (1918년 ~ 1939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폴란드가 독립을 되찾으면서, 민족 주권 회복 문제는 문학의 주요 관심사에서 벗어나고, 서구의 새로운 문학 형식과 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11][12][13]
새로운 변화는 시 분야에서 먼저 나타났다. 월간 시 잡지 이름을 딴 스카만데르파가 등장하여, 예술가에게 애국적 사명을 부과하는 것에 반발하며 시의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고 새로운 시 형식을 탐구했다. 스카만데르파에는 투빔, 레혼, 비에르진스키, 이바슈키에비치, 스워님스키 등이 속해 있었다. 이 중 투빔은 20세기 폴란드 최대의 시인으로 꼽힌다. 스카만데르파 외에도 '아방가르드' 미래파 시인들이 1920년대 후반에 등장했는데, 비트키에비치는 예리한 문예 이론으로, 프지보시, 바지크 등은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였다.
소설 분야에서는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돔브로프스카는 4부작 《낮과 밤》(1932-1934)을 썼고, 나우코프스카는 객관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죄수의 세계를 분석한 《세계의 벽》(1932), 사회 변화 속의 과제를 다룬 《경계》(1935) 등을 발표했다. 코사크슈추츠카는 역사 소설 《십자군 사람들》(1936)을 통해 역사 소설의 전통을 이었다.
1930년대에는 경제 위기와 파시즘의 영향으로 사회 저항 문학이 등장하며 좌익 작가들이 진출했다. 소련으로 귀화한 바실레프스카, 《영주와 농민》(1932)을 쓴 크루치코프스키 등이 대표적이다.
폴란드 간극기(Interbellum)의 20년은 시 분야의 급속한 발전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1918년부터 1939년까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점진적이고 연속적으로 도입되면서 독립적인 문학 경향들이 형성되었다. 폴란드 간극기 시의 첫 10년은 명확하고 건설적이며 낙관적이었던 반면, 두 번째 10년은 임박한 전쟁에 대한 어두운 전망, 폴란드 사회 내부의 갈등, 그리고 점차 커지는 비관주의로 특징지어졌다. 1933년에는 폴란드 문학 아카데미(PAL)가 설립되어 1939년 폴란드 침공까지 문학에 기여한 이들에게 금 월계관과 은 월계관을 수여했다.[14]
이 시기 주요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 | 주요 작품 및 활동 |
---|---|
스트루그 (1871~1937) | |
오센도프스키 (1876~1945) | 레닌: 신 없는 자들의 신(Lenin: God of the Godless) |
레시만 (약 1877~1937) | PAL 회원 |
마쿠신스키 (1884~1953) | 코지올레크 마톨렉(Koziołek Matołek), PAL 회원 |
비트키에비치 (1885~1939) | 니에나시체니에(Nienasycenie) |
그라빈스키 (1887~1936) | |
돔브로프스카 (1889~1965) | 노체 이 드니에(Noce i dnie) (밤과 낮) |
코사크슈추츠카 (1890~1968) | 크시조브치(Krzyżowcy) (3부작) |
파블리코프스카-야스노제프스카 (1891~1945) | |
슐츠 (1892~1942) | 산토리움 포트 클레프시드롱(Sanatorium Pod Klepsydrą) (모래시계 요양원) |
투빔 (1894~1953) | |
비에르진스키 (1894~1969) | PAL 회원 |
이바슈키에비치 (1894~1980) | 빌코의 시녀들(The Maids of Wilko) |
우로드조니에츠 (1895~1959) | |
스워님스키 (1895~1976) | |
레혼 (1899~1956) | |
쿤체비초바 (1899~1989) | |
브제흐바 (1900~1966) | |
바트 (1900~1967) | |
야시엔스키 (1901~1938) | |
프시보시 (1901~1970) | |
마키에비치 (1902~1985) | |
곰브로비치 (1904~1969) | 페르디두르케(Ferdydurke) |
긴찬카 (1917~1945) | 오 켄타우르치(O Centaurach) (켄타우로스에 관하여) |
10.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문학 (1939년 ~ 1945년)
나치와 소련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점령 기간 (1939년~1945년) 동안, 폴란드의 모든 예술 활동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문화 기관은 해체되었고, 작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강제 수용소나 나치 시대 게토에 수감되었고, 다른 일부는 국외로 추방되거나 망명했다. 투빔, 비에르진스키 등이 대표적인 망명 작가이다.[15]
이 시기 폴란드 국내에서는 폴란드어로 된 책이 단 한 권도 출판되지 않았을 정도로 문학 활동은 억압받았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폴란드 지하 저항 운동에 참여하거나, 비밀리에 문학 활동을 조직하여 저항을 이어갔다.[16] 바르샤바, 크라쿠프, 리비우 등지에서 강연, 시 낭송회, 작가 모임 등이 비밀리에 열렸고, 지하 출판물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폴란드에는 1,500여 개의 비밀 출판물이 있었는데, 그 중 약 200개가 문학 관련이었다.[17]
바친스키, 보로프스키, 가이츠 등은 지하 저항 운동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한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1920년대에 태어난 '콜룸브' 세대는 바르샤바 봉기에서 활약했다.[18]
전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 | 주요 작품 |
---|---|
조피아 나우코프스카 (1884–1954) | 메달리온 |
멜키오르 바니코비치 (1892–1974) | 몬테 카시노 전투 |
크리스티나 크라헬스카 (1914–1944) | |
구스타프 헤를링-그루진스키 (1919–2000) | 세상에서 떨어져: 회고록 |
크시슈토프 카밀 바친스키 (1921–1944) | |
타데우시 로제비치 (1921–2014) | |
타데우시 가이츠 (1922–1944) | |
타데우시 보로브스키 (1922–1951) | 가스실로 가는 길… |
미론 비아워셰프스키 (1922–1983) | |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1924–1998) | |
예르지 피코프스키 (1924–2006) |
11. 전후 문학 (1945년 ~ 현재)
제2차 세계 대전은 600만 명이 넘는 폴란드 국민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로 인한 유형 무형의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전후 폴란드 문학은 이러한 비극적인 고난의 의미를 묻고, 그 경험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나우코프스카의 《미달리온》(1946), 코사크슈추츠카의 《심연에서》(1946), 돔브로프스카의 《샛별》(1955) 등 기성 작가들과 예르지 안드제예프스키의 《밤》, 타데우시 보로프스키의 《마리아와의 이별》 등 신예 작가들의 작품이 전쟁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예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지금까지도 폴란드 문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19]
1949년경부터 폴란드 문학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요되었으나, 1957년을 기점으로 점차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소련 통치하에서 모든 텍스트는 엄격한 검열을 받았지만,[19] 많은 작가들이 폴란드 문학계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르지 안드제예프스키는 《아셰스 앤 다이아몬드》를 통해 반공 저항 운동을 묘사했고, 이 작품은 10년 후 안제이 와이다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카지미에시 위카는 다큐멘터리 픽션을 위한 "경계 소설"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19]
1944년부터 1956년까지 약 30만 명의 폴란드 시민이 체포되고, 정치범들에게 6,000건의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등 억압적인 상황이 지속되었다.[20] 많은 작가들이 공산 정권의 탄압에 굴복하거나 협력했지만,[21] 국내군(Home Army) 출신 작가 카지미에시 모차르스키처럼 저항한 작가도 있었다.[26]
이 시기에는 체스와프 미워시(1980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96년) 등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배출되었고, 스타니스와프 렘,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11. 1. 1989년 이전 주요 작가
- 구스타프 모르치네크 (1891–1963)
- 폴라 고야비친스카 (1896–1963)
- 알렉산데르 바트 (1900–1967)
- 세르기우시 피야세츠키 (1901–1964)
- 콘스탄티 이델폰스 갈친스키 (1905–1953)
- 얀 도브라친스키 (1910–1994)
- 체스와프 미워시 (1911–2004), 노벨 문학상 (1980)
- 카지미에시 브란디스 (1916–2000)
- 레오폴드 티르만트 (1920–1985)
- 스타니스와프 렘 (1921–2006)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23–2012), 노벨 문학상 (1996)
- 타데우시 콘비츠키 (1926–2015)
- 안제이 키요프스키 (1928–1985)
-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1930-2013)
- 안제이 부르샤 (1932–1957)
- 보그단 차이코프스키 (1932–2007)
-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1932–2007)
- 요안나흐미엘레프스카 (1932–2013)
- 마렉 우와스코 (1934–1969)
- 할리나 포스비아토프스카 (1935–1967)
- 야로스와프 마렉 림키에비치 (1935–2022), 니케 상 (2003)
- 야누시 A. 자이델 (1938–1985)
- 안제이 자니에프스키 (1939년생)
- 라파우 보야체크 (1945–1971)
- 말고르자타 무시에로비치 (1945년생)
- 아담 자가예프스키 (1945–2021)
- 에바 립스카 (1945년생)
- 스타니스와프 바란차크 (1946–2014), 니케 상 (1999)
11. 2. 1989년 이후 주요 작가
작가 | 출생-사망 | 비고 |
---|---|---|
안제이 사프콥스키 | 1948년~ | |
도로타 마스워프스카 | 1983년~ | 니케 문학상 (2006년) |
마렉 크라예프스키 | 1966년~ | |
요안나 바토르 | 1968년~ | 니케 문학상 (2013년) |
보이치에흐 쿠초크 | 1972년~ | 니케 문학상 (2004년) |
지타 루츠카 | 1964년~ | 니케 문학상 (2023년) |
레미기우슈 므루즈 | 1987년~ | |
예르지 필흐 | 1952년~2020년 | 니케 문학상 (2001년) |
파웨우 후엘레 | 1957년~ | |
안제이 스타시우크 | 1960년~ | 니케 문학상 (2005년) |
마리우시 슈치게우 | 1966년~ | 니케 문학상 (2019년) |
올가 토카르추크 | 1962년~ | 노벨 문학상 (2018년) |
12. 노벨 문학상 수상자
수상 연도 | 이름 | 사진 |
---|---|---|
1905 |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 ![]() |
1924 | 우와디스와프 레이몽트 | ![]() |
1980 | 체스와프 미워시 | |
1996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 |
2018 | 올가 토카르추크 | ![]()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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